<낙산에 올라> 恨(한) (한성대신문, 539호)

    • 입력 2018-11-19 00:00

 최근 강서구의 PC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많은 죽음을 접하는 법의학자 역시 이해하기 힘든 참혹한 상흔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사건은 PC방에서의 작은 말다툼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작은 말다툼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잔인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아무리 살아온 환경이 다를지라도 피의자는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일텐데 어떻게 저런 참혹한 행동을 떠올
릴 수가 있으며, 또 어떻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잔혹함의 범위에 의문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마음속에 있기에 잔인함이라는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났을까? 아마 그의 속엔 단단한 한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를 놓고 피의자의 한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치 않는 결과를 막기 위해서는 원인을 제거해야 하기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나는 일을 막기 위해선 피의자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람 99%가 후회하는 순간’이라는 설문 중 ‘참지 말아야 할 때 참는 것’이 높은 순위에 올랐다. 피의자를 비롯한 우리들 대다수는 참지 말아야 할 때 참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 하나 둘씩 모여 응고되고 결국 마음 속 단단한 한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꾹꾹 누르지만 말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표현하면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 누군가 표현하면 누군가는 그 표현을 받아주어야 한다. 즉 표 현을 위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이 의사소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또 그만큼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한(恨)이 쌓여가는 그들을 위해서, 한(恨)이 쌓일 수 있는 우리를 위해서.

이정호(인문 1)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