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올라> Shine your light (한성대신문, 540호)

    • 입력 2018-12-10 02:37

 조금 여유 있게 집을 나섰음에도 친구들과의 약속 시각에 늦은 적이 있다. 타야 할 버스의 대기 시간이 꽤 길어, 막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의 측면에 게시된 비슷한 목적지를 보고 그 버스에 오른 게 화근이었다. 내가 박효신의 ‘Shine your light’ 감상에 젖어있을 때, 버스는 이곳저곳을 한참 돌아 내 목적지와는 동떨어진 곳에 나를 내려 놓고 떠났고, 이 때문에 나는 약속 시각에 지각한 것으로 친구들에게 핀잔을 듣고 사과를 해야만 했다.
 이는 분명 급히 탄 버스가 당연히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줄 거라는 스스로 만든 환상과, 현 상황을 의심 하지 않고 마약이나 한 듯 그저 흐름에 몸을 실은 환각의 결과였다. 물론 그럴듯한 버스를 탄 경우가 항상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운이 좋게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와 같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기도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옆 사람이 툭 건드리고 “저기, 버스 잘못 타신 것 같은데요”라고 일러줄 일은 없으므로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버스 중간에 내리기는 쉽지 않다.
 목적지가 분명한 버스를 두고 도착이 늦다는 이유로 그럴듯한 버스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내 또래들 이 자신이 원하는 진로가 있음에도 현실과 타협하여 그럴듯한 진로를 선택하는 것과 공통점이 있다. 아 마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취업’이라는 이유로 마음이 급해서 또는 원하는 업종의 공개 채용에 모두 실패해 다음 기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와 같이 각기 다른 이유로 그리 원하지 않는 곳에 발을 딛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스와 진로의 차이점이 있다면, 버스를 잘못 타서 약속 시각에 늦으면 당장 친구에게 사과하면 해결되지만 진로를 잘못 선택한 경우는 미래의 ‘나’에게 사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진호(경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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