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변기가 무슨 예술 작품이야?” 마르셀 뒤샹의 <샘>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변기에 사인 하나 해놓고 뒤집어 놓은 것이 작품이라니…. 하지만 ‘고작’ 변기를 예술 작품이라 칭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터.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마르셀 뒤샹’ 전을 찾았다.
뒤샹이 세상을 떠난지 50주년을 맞이해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이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마르셀 뒤샹 회고전이다. 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4월 7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총 4부에 걸쳐 뒤샹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먼저 1부는 ‘화가의 삶’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청소년‧청년기의 뒤샹이 어떻게 화가로 성장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뒤샹이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20세기 초반에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다양한 미술 사조들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는 여러 미술 사조 중 뒤샹이 입체주의 기법을 어떻게 자신만의 색깔로 변주했는지 보여준다. 뒤샹은 이 그림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2부 제목은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이다. 2부에서는 화가의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던 뒤샹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 그는 붓을 내려놓고 회화가 아닌 다른 분야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레드메이드(작가가 작품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건에 다른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작품으로 유명한 <샘>이 탄생하게 된다. <샘> 은 단순한 변기가 아니라, 기존 예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뒤샹의 고뇌가 담긴 작품인 것이다.
3부에서는 1920, 30년대 뒤샹의 활동을 보여준다. 작품 형식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까지 변화시키려 했던 뒤샹은 이 시기에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었다. 그는 여장을 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자신이 판매하는 향수에 에로즈 셀라비의 얼굴을 로고로 넣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작품에 본명 대신 ‘에로즈 셀라비’라고 사인함으로써 에로즈 셀라비가 단순히 여장한 모습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우주희(가톨릭관동대 2) 관람객은 “자신을 세상의 틀에 맞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려 한 뒤샹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 4부 ‘우리 욕망의 여인’에서는 뒤샹의 마지막 작품 <에땅 도네>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뒤샹은 다소 에로틱한 이 작품에 대해 아무런 해석을 달지 않았는데, 그가 이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했는지 추측하며 작품을 감상한다면 전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50년, 100년 뒤의 대중과 소통하고자 했던 마르셀 뒤샹. 긴 시간을 넘어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지 이번 전시를 통해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정명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