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전시 속으로> 마르셀 뒤샹, 긴 시간을 넘어 대중과 마주하다 (한성대신문, 542호)

    • 입력 2019-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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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9-10-16 15:45
▲마르셀 뒤샹의 대표작 <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아니, 변기가 무슨 예술 작품이야?” 마르셀 뒤샹의 <샘>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변기에 사인 하나 해놓고 뒤집어 놓은 것이 작품이라니…. 하지만 ‘고작’ 변기를 예술 작품이라 칭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터.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마르셀 뒤샹’ 전을 찾았다. ​

뒤샹이 세상을 떠난지 50주년을 맞이해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이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마르셀 뒤샹 회고전이다. 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4월 7일까지 진행된다. ​

이번 전시는 총 4부에 걸쳐 뒤샹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먼저 1부는 ‘화가의 삶’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청소년‧청년기의 뒤샹이 어떻게 화가로 성장하는지를 보여준다. ​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여기에서는 뒤샹이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20세기 초반에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다양한 미술 사조들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는 여러 미술 사조 중 뒤샹이 입체주의 기법을 어떻게 자신만의 색깔로 변주했는지 보여준다. 뒤샹은 이 그림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

2부 제목은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이다. 2부에서는 화가의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던 뒤샹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 그는 붓을 내려놓고 회화가 아닌 다른 분야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레드메이드(작가가 작품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건에 다른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작품으로 유명한 <샘>이 탄생하게 된다. <샘> 은 단순한 변기가 아니라, 기존 예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뒤샹의 고뇌가 담긴 작품인 것이다. ​

3부에서는 1920, 30년대 뒤샹의 활동을 보여준다. 작품 형식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까지 변화시키려 했던 뒤샹은 이 시기에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었다. 그는 여장을 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자신이 판매하는 향수에 에로즈 셀라비의 얼굴을 로고로 넣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작품에 본명 대신 ‘에로즈 셀라비’라고 사인함으로써 에로즈 셀라비가 단순히 여장한 모습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우주희(가톨릭관동대 2) 관람객은 “자신을 세상의 틀에 맞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려 한 뒤샹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

마지막 4부 ‘우리 욕망의 여인’에서는 뒤샹의 마지막 작품 <에땅 도네>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뒤샹은 다소 에로틱한 이 작품에 대해 아무런 해석을 달지 않았는데, 그가 이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했는지 추측하며 작품을 감상한다면 전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50년, 100년 뒤의 대중과 소통하고자 했던 마르셀 뒤샹. 긴 시간을 넘어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지 이번 전시를 통해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정명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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