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꽃다운 청춘 집어삼킨 ‘위험의 외주화’ 그 해결책은? (한성대신문, 542호)

    • 입력 2019-03-04 00:00

지난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 씨가 사망했다. 그의 나이 향년 24세. 컨베이어 벨트 위에 쌓인 낙탄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던 도중 연료 공급용 벨트에 몸이 빨려 들어가 발생한 사고였다. 매뉴얼상으로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2인 1조로 근무해야 했으나, 하청업체에서 김 씨 혼자 근무하도록 지시한 탓에 사고 당시 그를 도와주거나 벨트 가동을 멈춰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19세 김모 군이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전동차에 끼어 사망한 사고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 사고 역시 현장 작업 시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매뉴얼이 존재했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김모 군 혼자 현장에 배치돼 참변을 막지 못했다.

이같이 사고 위험이 높은 일을 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마련돼 있지만, 원청업체가 위험을 ‘외주화’해서 비슷한 사고들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 이때 외주화는 ‘원청업체가 업무 효율 극대화를 목적으로 제3의 업체에 위탁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이승철(故 김용균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원청업체가 ‘고용주는 직접 고용하지 않은 노동자의 사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산안법의 허점을 이용해 업무를 외주화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위험한 업무가 하청업체의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5년간 국내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 중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피해 건수

실제로 최근 5년 동안 국내 발전소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346건 중 337건(97%), 사망사고 40건 중 37건(92%)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에게 피해를 입혔다. 김용균 씨가 근무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지난 6년간 58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고 9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지만, 그중 원청업체가 책임진 건은 단 2건에 불과했다.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56명이 모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다가 사고를 입었으나, 법률적으로는 하청업체가 책임을 지게되므로 원청업체인 태안화력발전소는 정부로부터 ‘무재해 인증’, 5년간 산업재해보험료 22억 4천 6백만 원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청업체가 일차적으로 하청업체에게 위험을 전가하면, 하청업체 내부에서는 또 다시 위험 전가가 이뤄진다. 위험한 작업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김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낙탄 제거 작업도 원래 하청업체 소속 정규직 노동자의 업무였으나, 비정규직인 그에게 배정됐다. 원청업체는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한 업무일수록 하청업체에 위탁하고, 하청업체는 이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맡기는 식이다.

이 와중에 정규직 일자리가 점차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있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 고용주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간제법(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법)을 근거로 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기보다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 2년이 지나면 기존 근무자를 해고하고, 다른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해 인건비를 절약하겠다는 전략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수많은 청년들이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작업 환경이 위험하더라도 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운 고위험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경력자를 선호하는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계약 형태가 비정규직이거나, 다소 위험에 노출되더라도 일단 취업해서 경력을 쌓아야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용균 씨와 같은 ‘비정규직 청년’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

이 위원장은 “청년층 비정규직 증가를 막기 위해 ‘상시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사에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만이라도 반드시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하면 위험업무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떠맡는 사태를 일정 부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근로자가 근무 중 사고를 당하면 고용주가 책임을 지게 되므로 고용주는 사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뉴얼대로 작업을 진행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편, 산안법 개정에 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얼마 전, 산안법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이 국회에 발의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된 산안법에서는 원·하청업체가 함께 일하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원청업체가 전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원청업체가 장소를 제공하거나 지정하는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책임을 지게끔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발의된 개정안에서는 극히 일부 업종에만 ‘유해위험업무 도급금지’ 조항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남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이들의 노력과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장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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