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익명이 가져온 대학가의 빛과 그림자 (한성대신문, 543호)

    • 입력 2019-03-25 00:00

병주고 약주는 익명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네이트판, 네이버 지식인, 블로그, 각종 포털 사이트의 카페…. 이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익명을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감출 수 있고 정보를 공유하기 쉽기 때문에 우리는 익명 게시판이나 댓글을 통해 정보를 전하기도 하고 접하기도 한다. 특히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터넷 접근이 더 쉬워지면서 ‘익명’의 정보는 우리의 일상과 뗄 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됐다.

이에 따라 익명 커뮤니티의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개방된 공간에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같은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소속을 인증하고 익명성을 보장받은 채 활동하는 커뮤니티가 등장한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블라인드’와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등이 그 예시다.

이러한 형태의 익명 커뮤니티는 대학가에서 고발의 장이 되기도 한다. 같은 집단에 소속된 이들에게 자신이 당했던 부당한 일을 알리거나, 집단 내 불합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여론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최근 우리학교에서 발생한 ‘A학과 면접 사건’이 있다. 지난 17일, 우리학교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A학과 학생회 면접 과정에서 면접관들이 부적절한 질문을 했다는 글이 게시됐다. 면접을 본 학생들은 익명의 게시글을 통해 ‘고학번 선배가 늦은 시간에 오라고 하면 올 것이냐’, ‘선배가 부당한 일을 시키면 할 것이냐’ 등의 질문을 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또, 그들은 ‘면접 응시자가 답변을 하면 비웃듯이 대꾸하거나 말을 끊는 등 면접관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다’며 해당 학과에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A학과 학생회에서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익명 게시판에서는 ‘잘못의 책임자를 명시하지 않았으며, 사과문이 아닌 변명문’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결국 A학과 학생회장은 다시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외에도 2017년, B학과에서 엠티를 가는 신입생에게 장기자랑을 강요한 것이 우리학교 대나무숲을 통해 고발된 일이 있었다. 당시 B학과 학생회는 즉각 사과문을 게시하고, 건의사항을 반영해 장기자랑 참가 여부를 ‘자유’로 변경했다.

이처럼 익명 게시판은 작성자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아 이용자들이 좀 더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대학가 내의 변화를 유도하는 기능이 있다.

이에 대해 임명호(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이용자들은 자신의 익명성이 더 잘 보장된다고 느낀다. 또한 많은 인원이 참여하 때문에 문제가 빨리 공론화되고 심각성도 쉽게 인식돼 익명 커뮤니티에서 부조리를 더 잘 폭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자의 신상이 보호되는 익명 커뮤니티의 특성을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달 초 이슈가 됐던 ‘한국교통대학교(이하 한국교통대) 에이즈 사건’이 그 예시다. 지난 2월, 한국교통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에이즈 감염자인데 기숙사에 입사할 수 있느냐’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이 글의 게시자는 다시 ‘에이즈에 감염된 학생이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기숙사에 입사하려 한다. 학교 측에 피검사를 하자고 적극적으로 항의하자’며 자작극을 벌였다. 한국교통대 측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해당 게시물을 작성한 학생은 장난으로 허위 사실 을 유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공포에 떨었으며, 한국교통대 대학본부는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같이 익명으로 작성된 허위 정보가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 우리학교 이수현(인문 3) 학생은 “학생들은 주로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기 때문에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파급력이 크다. 따라서 게시물이 잘못된 정보여도 학생들이 쉽게 휩쓸릴 수 있어 문제”라고 의견을 말했다.

임 교수는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유포하는 것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또, 익명을 사용할 경우 사용자들이 가면을 쓴 것처럼 느껴 오프라인에서보다 죄책감을 적게 느끼는 ‘방패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의 신뢰성보다는 내용 자체를 기억하는데, 이를 ‘슬리퍼 효과’라고 한다. 이 때문 에 익명 게시물의 정보 출처가 불분명함에도 잘 선동되는 것”이라고 원인을 밝혔다.

한편, 익명 게시판을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해 개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경우에는 명예훼손, 모욕죄 등으로 벌금형 또는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권영우(한국외국어 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우리는 때때로 ‘자유에는 분명히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익명성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개개인의 의식 개선과 이를 위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명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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