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손의 언어, 그림으로 울려 퍼지다 (한성대신문, 543호)

    • 입력 2019-03-25 00:00
수화 아티스트 박지후

우리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면 악수를 하곤 한다. 맞닿은 손을 통해 가장 먼저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서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는 마침내 인격과 인격으로 서로를 마주본다. 손이 가져다주는 솔직함에 빠져 수어(手語)를 그려내게 됐다는 박지후(32) 씨를 만났다.

그녀의 직업은 바로 ‘수화 아티스트’. 수화를 매개로 여러 예술 활동을 하고 싶어 스스로 창조해낸 명칭이다. 그녀는 현재 ‘지후트리’라는 이름으로 일러스트레이터, 타투이스트, 퍼포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화를 활용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도 처음부터 수화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그녀는 가족의 반대로 미술의 꿈을 뒤로한 채 지방 소재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1학년 겨울방학 때 우연히 관람한 ‘반 고흐 특별전’에서 잊고 지내던 미술에 대한 꿈을 되찾았다. 그녀는 다시 미술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단출하게 짐을 꾸려 상경했다. 그러나 2년간의 서울 생활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당장 필요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미술은 다시 뒷전이 됐다.

“어느 날 어머니가 ‘너 왜 서울 올라갔니?’라고 물으시는데 선뜻 답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 때 ‘아! 나 미술하려고 왔지’ 하고 번뜩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 후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야 좋을지 찾기 위해 마인드맵을 그렸어요. 그랬더니 ‘가족’과 ‘장애’에 관련된 키워드가 나왔죠. 삼촌이 화재 사고로 팔 한쪽을 잃으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충격을 받으신 어머니가 한쪽 청각을 잃으셨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장애를 안고 있다보니 저도 자연스레 장애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장애를 미술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수화를 그리게 됐죠.”

첫 수화 그림의 재료는 영수증이었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영수증을 모아 뒷면에 볼펜으로 수어 동작을 그렸다. 6개월간 영수증에 꾸준히 그려온 수화 그림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다채로운 색상을 입힌 그림으로 발전했다. 수어를 쓸 줄 몰랐던 그녀는 수화를 기초부터 배워야 했다.

“수어 동작은 수화 표준어 사전을 찾아보면서 스스로 익혔어요. 특히 전시나 작품을 준비할 때 더 많이 공부하죠. 작품을 구상할 때는 먼저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에 맞는 수화를 공부해요. 그리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거예요.”

그녀의 도구는 아크릴물감, 크레파스, 포토샵 등 종류에 제한이 없다. 친숙한 재료로 표현함으로써 수화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수화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언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특징이 있는 그림을 그린다는 게 정말 어려운데 수화를 통해 그 답을 찾았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게 재밌어요.”

그녀가 수화 그림을 시작한 지는 약 7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그녀를 거쳐온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단연 <꽃>이다. <꽃>은 2014년도 작품으로, 그녀가 처음 밑그림 없이 술술 그려낸 그림이다.

“사람마다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는 수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인생에 꽃을 피웠어요. 특히 <꽃>을 계기로 제 인생에 열매를 맺었다고 볼 수 있죠. 이 작품을 그리고서 전시회에 출품도 많이 하게 됐고,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일에 동기부여가 됐거든요.”

▲박지후(지후트리) 씨의 <꽃>.

그녀는 그림뿐만 아니라 수작업으로 타투를 새기는 핸드포크 타투도 하고 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 싶단 생각에 핸드포크 타투를 시작했어요. 타투 작업에 사용되는 전동 머신 대신, 타투용 바늘로 점과 선을 한 땀 한 땀 작업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도안도 수화 도안을 주로 작업해요.”

이외에도 그녀는 수화를 몸으로 직접 표현하는 수화 퍼포머로 활동한다. 그녀는 2년 전, 연인인 현대무용가 서일영 씨와 함께 ‘후후탱크’라는 퍼포먼스 팀을 결성했다.

“후후탱크는 수어의 아름답고 역동적인 손동작을 현대무용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하는 취지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글을 수화 문장으로 만들면, 남자친구가 안무를 짜서 퍼포먼스로 구현해요. 그것을 대중 앞에서 선보였을 때 느껴지는 관객의 눈빛과 분위기가 제게 다시 영감을 주죠.”

세 가지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몸이 두개라도 부족할 듯싶지만, 그녀는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이 작품에서 얻은 울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그것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종적으로는 신체장애인들과 농인들, 그리고 청인(비장애인)들을 이어주는 하나의 예술 페스티벌을 여는 것이 목표예요. 그 때 제 그림이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는 거죠. 전시, 수화 워크숍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어요.”

정수민 기자

sff1228@naver.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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