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학가 융합교육, 이대로 가도 괜찮은가 (한성대신문, 546호)

    • 입력 2019-06-03 00:00

<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학 분야가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일부 대학은 신입생들에게 기초 프로그래밍을 교육하거나 인문 계열 학과와 공학계열 학과를 결합한 융합전공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인문계열 학과는 다른 학과와 통합되거나 폐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이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교육부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학이 응용 분야에 치중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일각에서는 ‘학문 연구’라는 대학의 순수 기능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대학이 이대로 가도 괜찮은지, 무엇이 이러한 현상을 야기하는지 분석해봤다.

실상은 수박 겉핥기 식 교육?

최근 대학가에 때 아닌 ‘융합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 대학이 하나의 학문을 전공으로 정해 깊게 파고드는 방식을 채택했다면, 이제는 여러 학문을 두루 배우는 방식을 쓰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여러 대학에서 2개 이상 학과의 교육과정을 통합한 융합학과를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민대학교의 경우, ‘소프트웨어학부’와 ‘영상디자인학과’를 합친 ‘디지털엔터테인먼트전공’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래밍 교육도 융합교육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에 프로그래밍은 공학계열 학생의 전유물이었으나, 최근 인문학과 정보과학기술의 접목이 활발하게 시도되면서 인문계열 학생도 프로그래밍 학습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국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는 신입생들에게 프로그래밍 과목을 필수교양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융합교육 열풍의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정보과학, 생명과학 등 서로 다른 분야가 융합해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최근의 사회 현상을 총칭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융합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들 모두 정보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에, 다수 기업들은 정보과학기술의 기반이 되는 프로그래밍 능력을 가진 인재를 요구하게 됐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대학들이 너도나도 융합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정부 지원사업도 융합교육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다. 교육부는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사업)’과 ‘사회 맞춤형 산학협력선도대학 사업(LINC+사업)’ 등을 운영해, 공학 분야를 중심으로 학제를 개편한 일부 대학에 지원금을 주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정부가 지원 사업을 미끼로 대학들에게 ‘체질 개선’을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

‘큰 흐름을 따라야 한다’ vs ‘수박 겉핥기 식 교육이다’

이러한 융합교육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복잡하다.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미래 사회를 선도할 인재 육성이 학교의 목적이라는 시각에서, 융합교육은 전 세계의 트렌드이므로 대학에서 이를 따르는 것은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우려하는 입장에서는 대학이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자칫 학생들이나 교원들의 전문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학교 김일민(IT융합공학부) 교수는 “공학을 중심으로 한 융합교육은 전 세계의 추세를 따르는 것으로 바람직하다”며 “오히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시작했으므로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프로그래밍 교육의 경우, 영국과 프랑스는 2016년에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정규 과정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 정부 사업에 대해서 김 교수는 “앞으로 우리 사회는 문제 해결능력과 IT기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게 사업의 목적이라면 이는 합당하다고 본다” 고 말했다.

반면, 최근의 융합교육 열기를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학교 정헌이(예술학부) 교수는 “융합이란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이해가 깊을 때 비로소 나온다. 하지만 현재 각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융합교육은 여러 학문을 얕게 섭렵하는 ‘수박 겉핥기’식 형태인데, 이러한 환경에서 과연 진정한 융합이 나올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대학의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영진(진보교육연구소) 운영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프로그래밍 기술을 가르쳐야 하는 데는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에서 무작정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IT산업 특성상 개발자는 소수만 필요할뿐더러 (프로그래밍 자체보다는) 오히려 프로그램 언어의 문법과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 위원은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학생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데 힘을 써야 한다. 따라서 기초과학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 사회과학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공학 중심의 교육부 지원 정책으로 인해 인문학은 상대적으로 도태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됐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행한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공학계열 학생은 562,506명(2015)에서 571,165명(2018)으로 증가한 반면, 인문계열 학생은 264,619명(2015)에서 240,422명(2018)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교육부 사업 규모에서도 드러났다. 교육부는 인문학 분야를 육성하는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CORE사업)을 추진해 사업에 선정된 학교에 5억 원에서 40억 원 정도를 지원했다. 이는 PRIME사업이 150억 원에서 300억 원 정도를 지원한 것에 비해 대조적으로 적은 규모다.

우리학교는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트랙제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2개 이상 트랙을 이수하게 해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섭렵하게끔 함으로써 융합교육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융합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있으므로 이에 충분히 심도 있는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융합교육이 단순히 적응을 위한 진통일지, 아니면 대학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는 독잔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윤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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