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대학가에는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학교 내에서 이뤄지는 주류 판매가 모두 금지된 것이다. 이는 같은 달 인하대학교 자치 기구가 축제 기간에 학생주점에서 술을 판매한 사실이 ‘무면허 주류 판매금지’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그리고 지금, 대학가에는 또 다른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술을 강권했던 문화에서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어떤 연유로 나타나고 있는 걸까?
안전선을 넘어버린 음주행태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대학생들의 음주문화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생의 음주행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가 발표한 『우리나라 대학생의 음주행태 심층조사』에 따르면, ‘매달 음주’를 하는 대학생은 총 5,024명 중 3,788명(75.4%)에 달했다. 하루 음주량으로는 남학생 1,089명(44%), 여학생 837명(33%) 이 한 자리에서 소주를 10잔 이상 마신다고 나타났다. 이는 질병관리본부가 정의한 고위험 음주’가 1회 평균 7잔 이상임을 감안했을 때 매우 높은 수치다. 또한 술을 마시라는 강요를 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은 1,592명(31.7%)으로, 3명 중 1명꼴로 밝혀졌다. 아직까지 신입생 환영회나 MT 등 각종 모임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음주를 강요하는 풍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일부 대학은 교내 술자리 횟수를 줄이고자 신입생 환영회나 MT 등을 공식적으로 폐지 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여전히 각종 행사에서 술을 빼놓지 않고 소비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고위험 음주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음주량이 적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이다. 결국 올바른 음주 인식이 갖춰지지 않은 탓에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셈이다. 이에 박은철(연세대학교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는 캠퍼스 내 음주정책이나 음주 예방 관련 프로그램들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 제고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건전한 음주를 위한 움직임
이에 따라 올해 대학가는 주체적이고 부담 없는 술자리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술 강권 금지 팔찌(이하 술 팔찌)’다. 술 팔찌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 학생도 행사에 편하게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팔찌 색깔로 술을 마실 사람과 마시지 않을 사람을 구분한 것이 특징이다. 이때 노란색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 분홍색은 ‘적당히 마시겠다’, 검은색은 ‘충분히 마실 수 있다’를 뜻한다. 술 팔찌는 올해 숭실대학교 총학생회가 간부수련회를 시작으로 신입생 환영회에서까지 활용해 학생들의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취지에 맞는 효과를 톡톡히 입증하기도 했다. 권슬기(숭실대학교 총학생회) 사무국장은 “신입생이 처음 보는 선배에게 술을 그만 먹고 싶다고 말하기 곤란한 경우가 있는데, 팔찌로 규칙을 만들고 나서 신입생들 사이에서 술자리 부담이 적어 좋다는 반응이 있었다. 노란 팔찌를 착용한 학생에게는 확실히 술을 권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한편, 술 팔찌에 대해 장성인(연세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팔찌를 제공함으로써 음주를 강요하는 문화가 조금이라도 사라진다면 그것이 대학 내 음주문화를 바꾸는 데 크고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며 “서로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등 선배와 동기들의 배려심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더 나은 음주문화를 위해
향후 대학가 음주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장 교수는 “결국에는 우리 나라의 모든 대학에서 캠퍼스 내 음주를 금지하고, 주류 회사의 주류 스폰서십도 금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그는 “현재 보건당국과 교육청, 그리고 대학이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주류 회사는 대학생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아 판촉행위를 하고 있다. 전문가와 정부, 교육청 및 대학이 정책을 도입해 대학가에서 올바른 음주 풍토가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리주’라는 이름 아래 술을 강요했던 문화에서 술 팔찌를 이용해 자유로운 음주가 가능하기까지. 이제 대학가는 앞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적 인식과, 아직까지 남아있는 술 문화 사이의 괴리 해결이라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모두가 안전하고 즐거운 술자리는 과연 가능할까?
정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