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의 끝판왕, SF·판타지도서관 전홍식 관장을 만나다.
자신의 취미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사비를 들여 도서관까지 설립한 마니아가 있다. 바로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SF·판타지도서관을 운영 중인 SF 마니아 전홍식 관장이다. 2009년 3월 정식 개관을 한 SF·판타지도서관은 현재 8년째 운영되고 있다. 여력이 계속되는 한 도서관을 운영할 생각이라는 전홍식 관장을 만났다.
왜 SF였을까? 거부할 수 없었던 SF만의 매력
전홍식 관장이 SF·판타지도서관을 설립하게 한 SF(공상과학소설 Science Fiction의 약어)에는 언제부터 빠지게 된 것일까? 그가 느낀 SF 장르만의 매력이 궁금했다. 그는 1997년부터 <스타워즈>를 통해 본격적으로 SF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광활한 대우주에서 별을 넘나드는 모험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된 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편에서는 화면을 가득 메우는 우주선 외에도, 쓰레기장이나 낡고 허름한 등장인물들의 모습도 나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주 어딘가에서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죠.”
꿈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편, 경계심을 심어주는 SF만의 힘
전홍식 관장은 SF의 매력이자 가장 큰 힘으로 ‘상상력’과 ‘가능성’을 꼽는다. 어린 시절 과학상상화를 그리며 꿈꾸던 미래 모습들이 오늘날 증강현실·가상현실·인공지능·최첨단IT기술 등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는 오히려 당연하다고 말한다. “SF 장르는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그럴싸한 미래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SF를 보다 보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죠.”
그렇다면 조지 오웰의 <1984> 등과 같은 작품에서는 나타나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인 세계관도 우리의 미래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홍식 관장은 이미 우리가 조지 오웰의 상상 일부가 실현된 ‘빅브라더’의 감시 속에서 살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지만 그는 <1984>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빅브라더’를 경계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알파고’를 보면서 영화 <터미네이터>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도, 영화 <투모로우>를 보면서 지구의 빙하기 도래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게 된 것도 모두 SF의 힘이라는 것이다. “저는 SF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SF는 사람들이 상상하고, 사유하고, 또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SF를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
SF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안타까워하며 입을 열었다. “SF가 유치하다거나 혹은 어렵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계속 있었던 편견입니다.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로 즐기려는 것이 소설을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SF에 나오는 과학적 지식을 학습하려 하거나, 그것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근거를 분석하기 시작할 때, 감상이 의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는 영화 <스타트렉>의 일화를 소개했다. 스타트렉 제작진에게 누군가가 “스타트렉에 나오는 워프 장치는 어떻게 작동합니까?”라고 묻자, “아주 잘 작동합니다!”라도 답했다는 것. 즉, 이야기 구조상 워프 장치가 잘 작동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SF, 사이언스 픽션의 방점은 사이언스가 아닌 픽션에 찍힌다고 생각합니다. SF는 가상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픽션, 하나의 창작예술물인 것이죠.”
취미야말로 인생을 즐겁게 하는 요소
도서관 운영이 전홍식 관장의 본업은 아니다. 도서관은 취미의 연장선이다. 사재를 털어 도서관을 운영해 온 그에게 취미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행복하려면 삶에서 즐거운 일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일을 가장 많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취미지요.”
그는 먼저 삶의 방식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며,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많은 청년에게 굳이 직업으로 꿈을 이룰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좋아하는 것과 직업 간에 괴리가 발생할 때, 필요한 해결책이 바로 취미라는 것이다. 그는 대다수 사람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좋아하는 걸 찾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찾게 되면, 그 하나만 있어도 삶이 행복한 것이죠.”
전홍식 관장은 도서관이 SF·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애정을 쏟는 전홍식 관장을 통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하나에 몰입하는 인간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저는 SF·판타지도서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습니다.”
김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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