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처받을 또 다른 ‘나’를 위해 (한성대신문, 550호)

    • 입력 201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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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11-02 15:51

기자는 며칠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카페에서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 물건을 도난당한 것이다. 다행히 빠른 신고로 물건을 되찾을 수 있었기에, 본인은 이를 가벼운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저 해프닝으로 끝났을 사건이 당혹감과 상처로 가득한 사건으로 뒤바뀌었다. 바로 사람들이 기자에게 무심코 던진 말들 때문이다.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기자에게는 “이 일은 그런 곳에 물건을 두고 자리를 비운 ‘너’의 잘못”이라는 따가운 질책과“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가자”는 주변인들의 강요가 이어졌다. 말로만 듣던 2차 가해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상황에서 기자는 예상치 못한 질책에 당혹감을 느꼈고,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해명 한 마디 못하는 바보가 됐다.

이것은 비단 기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 배우가 자택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됐지만, 일부에선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함부로 집까지 따라간 것이 잘못”이라며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냐”고 질책했다. 처제를 90여 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40대에 대한 기사에는 “왜 그걸 참았을까요? 피해자가 더 이상하네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피해자에게 ‘피해자의 행실이 불량해서 범죄 피해를 자초한 것’이라며 모욕하거나 배척하는 식의 2차 가해가 만연한 것이다.

피해자는 단어 그 자체로 피해를 본 사람을 의미하지만, 우리 사회는 피해자에게스스로 피해자임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정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일을 당한 후 정상적인생활이 불가능했는지 등, 수많은 문항을 통과해야만 사회는 비로소 그를 피해자로 인정한다. 하지만 사회가 인정한 피해자가된 순간, 피해자의 마음은 이미 2차 가해로 난도질당한 뒤다.

지난 9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는 순간, 피해자는 이런 말을 했다.

“2차 가해로 나뒹구는 온갖 거짓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제발 이제는 거짓의 비난에서 나를 놓아 달라.”

어쩌면 피해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피해 사실보다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일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피해자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무수한 시도가 모인다면 언젠가 그들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 수 있지 않을까.

박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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